DOGE 정책, 거꾸로 실행하면 어떨까?

효율만으로 설계된 사회를 넘어
1. 위태로운 균형 위에서
최근, 커피를 마시며 실리콘 밸리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대기업이 AI 도입으로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효율은 높아졌겠지만, 그 빈자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남았을까요?
민간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는 건 마치 중력과도 같은 자연의 법칙처럼 느껴집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요.
특히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지금, 인력 감축은 더욱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은행에서 사람 대신 기계와 대화하고,
마트에서는 셀프 계산대에 익숙해졌으며,
공장에서는 로봇 팔이 인간의 손을 대신합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2. 사라지는 일자리, 메마르는 주머니
그런데 만약, 정부마저 이 흐름에 합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DOGE 예산 삭감이 추진되는 정부 부처의 회의실을 상상해봅니다.
표와 그래프로 가득한 프레젠테이션 화면 앞에서 누군가 "효율"과 "최적화"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화면에는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근로자의 줄어든 월급으로 채워지지 않는 식탁,
그리고 더 이상 지르지 못하는 아이의 새 운동화.
이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심장부가 멈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축 정책을 선택했던 그리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공공 부문 감축으로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고,
거리에는 시위대가, 가정에는 절망이 가득했습니다.
숫자의 논리가 인간의 현실을 압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3. 예산, 숫자가 아닌 내일의 설계도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예산은 우리가 함께 그리는 미래의 밑그림입니다.
국가가 지출을 줄이는 순간, 그 공백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빈자리는 국민의 삶에 구멍으로 남습니다.
도서관의 문이 일찍 닫히고,
버스는 더 늦게 오며,
공원의 꽃은 시들어갑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 서비스는 지연되며,
사회 안전망의 그물코는 점점 넓어집니다.
‘지금’을 위한 숫자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설계도.
그것이 진정한 예산의 의미가 아닐까요?
저는 감히 상상해봅니다.
국가가 기업처럼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순환을 돕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요?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를 생각해봅니다.
GDP의 50% 정도를 공공 지출에 사용하는 이 나라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에서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높은 세금과 정부 지출은 낭비가 아닌,
사회 전체의 번영을 위한 투자처럼 보입니다.
4. 외주화의 그림자
누군가는 말합니다.
“정부가 비효율적이니, 민간에 맡기면 더 잘 될 거야.”
물론 민간은 기술과 효율의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효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프신 할머니의 집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를 생각해보세요.
10분이라도 더 머물러 말벗이 되어드리는 그 시간은 ‘효율’로 측정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수도, 전기, 인터넷, 의료…
이런 것들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한,
공기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이윤의 논리에 맡겨진 공기는 어떻게 될까요?
값비싼 산소통을 살 수 있는 사람만
깊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2007년, 일본은 우정사업의 민영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익성이 낮은 지방 우체국들이 문을 닫았고,
고령자와 취약계층이 많은 시골 지역에서는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와 우편 서비스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효율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사회적 안전망은 약해졌습니다.
5. 보이지 않는 가치의 정원
경제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말했습니다.
“GDP는 경제적 생산성을 측정하지만,
삶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많은 것들은 측정하지 못한다.”
GDP가 삶의 물질적 측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정, 건강한 환경, 공동체의 연대감, 정신적 안정 같은 요소들은
GDP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효율의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측정할 수 없지만 삶에 필수적인 가치들을
간과할 위험이 있습니다.
6. 기계 시대의 인간다움
AI 시대, 기계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기계가 우리의 일을 대신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본주의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여전히 돈을 벌고, 소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자리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움직이는 윤활유이며,
개인에게는 자존감과 목적의 원천입니다.
저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일들을 떠올려 봅니다.
어린이를 돌보고, 노인의 말벗이 되고,
환경을 보호하고, 예술을 창작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
이것들은 효율의 논리보다
관계와 공감의 논리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국가가 이러한 ‘인간다움’의 영역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며
새로운 번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7. 함께 짓는 미래
기술은 집중되면 권력이 되고,
분산되면 자유가 됩니다.
인터넷의 초기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중앙의 통제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경이로운 창조물이었습니다.
리눅스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위키피디아와 같은 집단 지성의 결과물들.
이것들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인류에게 무한한 가치를 선사했습니다.
국가가 이러한 열린 협력의 생태계를 지원한다면 어떨까요?
거대 기업의 독점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 기술의 혜택을 나누고 발전시키는 구조.
그것은 단기적 효율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튼튼하고 민주적인 기술 기반이 될 것입니다.
8. 나의 작은 상상
지금까지 DOGE 예산 삭감의 반대편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국가가 돈을 더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재정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제가 드린 이야기가 모두 정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효율과 성장 외에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AI 혁명이 가져올 변화는
산업혁명만큼이나 크고 근본적일 것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관리자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사회 계약의 설계자일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하루살이